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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론연구

국가의 본질과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이론을 탐구합니다.

국가론연구

일본·한국의 국가론 연구 동향

서론: 수용의 이중 경로

동아시아에서 국가론은 자생적으로 발전하지 않고, 독일 국가론의 번역·수용이라는 외부 경로를 통해 형성되었다. 수용의 경로는 '독일→일본→한국'이라는 이중 매개 구조를 가지며, 이것이 오늘날 한국·일본 국가론 연구의 독자성 부재라는 구조적 한계로 이어진다.


1. 일본: 수용의 정점과 전후의 탈(脫)국가론화

(1) 메이지(明治) 헌법 체제와 독일 국가론의 이식

메이지(明治) 유신 이후 일본 공법학은 독일 국가론을 전면 수입했다. 핵심은 옐리네크(Georg Jellinek)의 국가법인설(Staatspersönlichkeitslehre)이다. 미노베 다쓰키치(美濃部達吉)는 1912년 발표한 헌법강화(憲法講話)에서, 천황은 국가의 최고기관으로 있다는 독일의 옐리네크(Georg Jellinek)의 국가법인설에 근거한 천황기관설(天皇機關說)을 발표했다. Wikipedia 이에 맞서 우에스기 신키치(上杉慎吉)가 천황주권설(天皇主權說)을 주장함으로써, 일본 공법학의 초기 국가론 논쟁은 독일의 군주제 원리(Monarchisches Prinzip) 대(對) 국가법인설의 대립 구도를 그대로 재현하는 형태로 전개되었다.

메이지 시대 일본은 독일에서 두 개의 헌법 원리를 수입했다. 군주제 원리(君主制原理)와 국가법인이론(國家法人理論)이다. 군주제 원리는 천황주권원리라고도 불리며, 이를 주창한 것이 우에스기 신키치(上杉慎吉)였고, 국가법인이론을 주창한 것이 미노베 다쓰키치(美濃部達吉)였다. Keisobiblio

이 국가론 논쟁은 1935년 천황기관설 사건(天皇機關說事件)으로 미노베가 정치적으로 탄압받으며 종결되었고, 이후 군국주의 국가론이 지배했다.

(2) 전후: 국가론의 해체와 헌법 도그마틱으로의 흡수

전후 일본국 헌법(日本國憲法, 1946)의 제정과 함께 일본 공법학은 근본적 전환을 겪었다. 독자적인 국가론 전통을 발전시키는 대신, 아시베 노부요시(芦部信喜)로 대표되는 인권 중심 헌법학이 주류를 형성했다.

아시베(芦部)는 헌법이 역사의 산물이라는 전제 위에, 시민혁명을 거쳐 발전해온 근대 헌법은 무엇보다 '자유의 기초법'이라는 점에 특질이 있으며, '개인 존중의 원리'와 그에 기반한 체계를 근본규범으로 삼는 가치 질서라고 한다. Wikipedia 이는 국가를 전면에 놓는 국가론이 아니라 국가권력에 대한 개인 기본권의 방어를 중심에 두는 헌법학 패러다임이다.

아시베는 미국의 헌법학설과 판례를 다른 이들에 앞서 도입하여 전후 헌법학계의 논의를 이끌고 그 발전에 기여했다. Wikipedia 즉 독일 국가론 전통에서 미국식 인권·사법심사 중심 헌법학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3) 현재의 국가론 관련 논의

전후 일본에서 순수한 의미의 '국가론' 연구는 공법학 분야에서 주류가 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관련 논의는 다음 형태로 진행된다.

  • 통치론(統治論): 하세베 야스오(長谷部恭男, 와세다 대학(早稲田大學)) 등이 권력분립, 입헌민주주의의 이론적 기초를 탐구. 하세베의 『헌법(憲法)』(신세사(新世社))은 롤스(Rawls)식 자유주의 철학을 헌법 이론의 토대로 삼는 접근법을 취한다.
  • 동아시아 비교 국가론: 도쿄대학(東京大學) 법학정치학연구과의 '국가론' 강의는 "국가란 무엇인가, 행정 활동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지금까지 일본에서는 주로 20세기 이후 구미의 학설을 참조하는 형태로 논의가 진행되어 왔으나 그것이 유일한 방법은 아니라는 문제의식 하에, 서양과 동아시아의 고전을 비교하는 방식을 취한다. U-tokyo
  • 긴급사태론과 국가: 하세베 야스오(長谷部恭男)는 나치스(Nazis)의 방법과 긴급사태 조항(緊急事態條項)을 주제로 한 저술을 통해, 국가 예외 상태 논의를 일본 헌법 맥락에서 전개하고 있다.

(4) 구조적 한계

일본 공법학계에서 국가론은 독자적 학문 영역으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 독일의 국가론 전통을 수용했던 메이지 시대의 학문적 유산은 전후에 청산의 대상이 되었고, 새로운 국가론의 재구성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점에서 일본의 상황은 프랑스와 유사하게, 고전의 역사적 의미는 인정하면서도 현재의 체계적 국가론 연구는 공백 상태라고 할 수 있다.


2. 한국: 이중 수용의 구조와 독자적 국가론의 부재

(1) 수용의 이중 경로

한국 헌법학의 국가론은 독일 국가론을 직접 수용한 측면과 일본을 경유하여 수용한 측면이 중첩된다. 메이지 정부는 근대법 계수 과정에서 대륙법, 특히 독일법과 프랑스법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고, 한국과 대만을 식민통치할 때 그 영향을 주어 현대 한국법과 대만법에도 강한 영향을 미쳤다. Wikipedia

(2) 시대별 헌법학자의 형성과 국가론 수용

① 일제시대(~1945): 식민지 법학의 토대

일제식민지 시기에는 독자적인 헌법학이 발달할 수 없었다. 조선총독부의 통치 아래 법학 교육은 일본 제국주의 법체계의 전달에 국한되었고, 조선인 법학자들은 주로 일본의 제국대학에서 수학했다. 이 시기의 대표적 인물은 유진오(兪鎭午, 1906–1987)이다. 유진오는 경성제국대학(京城帝國大學) 법문학부를 졸업하고, 이후 한국 헌법의 기초자가 되었다. 그는 독일 바이마르 헌법(Weimarer Verfassung)과 일본 메이지 헌법 체제의 영향을 동시에 받으면서, 해방 이후 헌법 제정 작업에서 이를 비판적으로 극복하려 했다.

② 미군정기(1945–1948): 헌법 제정의 준비

해방 후 미군정(美軍政, USAMGIK) 치하에서 한국 법학은 일제의 법체계를 청산하고 새로운 민주주의 헌법 질서를 모색했다. 이 시기 유진오는 헌법 초안 기초 작업에 착수하여 1948년 제헌헌법(制憲憲法)의 핵심 초안을 마련했다. 유진오의 헌법 초안은 독일 바이마르 헌법, 프랑스 제4공화국 헌법, 미국 헌법의 영향을 복합적으로 반영한 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미군정기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이 설립(1946)되어 한국 법학 교육의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었다.

③ 건국 이후 제1세대(1948–1960년대): 헌법학의 제도적 형성

제헌 이후 한국 헌법학의 제1세대는 헌법 제정에 직접 관여하거나 해방 직후 법학 교육을 담당한 학자들이다.

  • 유진오(兪鎭午, 1906–1987): 제헌헌법의 기초자로서 한국 헌법학의 원점에 해당한다. 그의 『헌법해의(憲法解義)』(1949)는 한국 최초의 본격적 헌법 주석서이다.
  • 한태연(韓泰淵, 1916–2001):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로서 독일 국가론과 헌법이론을 체계적으로 수용하여 한국 헌법학의 이론적 기초를 놓았다.
  • 문홍주(文鴻柱, 1917–1993): 헌법학 교과서를 통해 한국 헌법학의 초기 체계화에 기여했다.
  • 박일경(朴一慶, 1918–2001): 헌법학·행정법학 교과서 저술을 통해 공법학의 기초를 형성했다.

④ 제2세대(1970–1990년대): 독일 국가론의 직접 수용과 비판적 재구성

제2세대는 직접 독일 유학을 통해 현대 독일 국가론을 수용하고 한국 헌법학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세대이다. 박정희 권위주의 체제에 맞선 학문적 저항의 성격도 띤다.

  • 김철수(金哲洙, 1933–2023): 서울대(Seoul National University)에서 41년간 재직하며 헌법 해석뿐 아니라 헌법철학·헌법정책학 등 문호를 넓혀 입헌주의와 법치주의의 신장에 기여했다. Aladin 그의 헌법학 교과서는 '국가의 본질과 국가형태' 장을 포함하여 국가론의 기초를 정면으로 다루었다.
  • 허영(許營, 1934– ): 경희대학교(Kyung Hee University)를 졸업하고 1971년 독일 뮌헨 대학(Universität München)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유신헌법의 이론적 기초가 됐던 카를 슈미트(Carl Schmitt)의 결단주의(영도적 국가론)에 맞서 스멘트(Rudolf Smend)의 동화적 통합이론(Integrationslehre)을 주창했다. Wikipedia 이는 당시의 권위주의 국가론에 대한 학문적 저항이기도 했다.
  • 권영성(權寧星, 1934–2010): 서울대학교 교수로서 헌법학 교과서를 집필하여 한국 헌법학의 주요 교재를 확립했다.
  • 계희열(桂禧悅, 1940–2016): 독일 보훔 대학(Ruhr-Universität Bochum)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독일 기본권 이론을 체계적으로 도입했다.
  • 권영설(權寧卨, 1944년– ):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헌법학을 수학한 후 중앙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로 재직하다 명예교수로 퇴임했다. 독일 국가론 중심의 동세대 학자들과 달리 미국 헌법학의 시각에서 한국 헌법을 분석한 점이 특징이다. 한국공법학회 회장(2000년)을 역임하고, 반테러리즘과 법치주의(Hamdan 판결 분석), 이주·국적법과 다문화주의 등 국가론 및 헌법이론에 관한 관한 논문을 다수 발표했다.

⑤ 제3세대(1990년대–현재): 다원화와 헌법재판소 중심 헌법학

1988년 헌법재판소의 창설은 한국 헌법학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꾸었다. 제3세대는 헌법재판소 결정례 분석을 중심으로 하는 실천적 헌법학을 발전시켰다.

  • 성낙인(成樂寅, 1953– ): 프랑스 파리 제2대학교(Université Panthéon-Assas)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헌법학 교과서에서 '국가의 본질과 국가형태'를 독립 장으로 구성하여 다루고 있다. 서울대학교 총장을 역임했다.
  • 한수웅(韓秀雄, 1960– ): 독일 레겐스부르크 대학(Universität Regensburg)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헌법재판소 재판연구관을 역임하며 기본권 도그마틱을 발전시켰다.
  • 장영수(張永洙, 1959– ): 독일 쾰른 대학(Universität zu Köln)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헌법국가론과 기본권 이론을 발전시켰다.

(3) 현재의 상황: 국가론의 교과서적 정착과 연구의 공백

한국 헌법학 교과서는 일반적으로 헌법총론 부분에 '국가의 본질과 국가형태'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국가론 자체를 독자적 연구 대상으로 삼기보다는, 헌법 해석론의 서론적 부분으로 위치시키는 교과서적 처리에 그치고 있다. 국가론을 독립된 학문 영역으로 삼는 체계적 연구는 극히 드물다.

현재 한국 헌법학계의 연구 경향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 헌법재판소 결정 분석: 연구의 압도적 비중이 헌법재판소 결정례 분석에 집중되어 있다.
  • 기본권 도그마틱: 평등권·표현의 자유·재산권 등 개별 기본권의 도그마틱이 주류
  • 비교헌법: 독일·미국·프랑스 헌법 판례 및 이론의 소개와 비교
  • 국가론 고유 연구의 공백: 국가의 본질·국가주권·국가법인격 등을 독자적으로 분석하는 이론 연구는 매우 적다

(4) 주목할 최근 흐름

최근 국가론과 간접적으로 연결되는 몇 가지 연구 흐름이 있다.

  • 국가비상사태론: 2024년 12월 비상계엄 선포 사태를 계기로 헌법 제77조의 계엄·비상사태 관련 연구가 폭증하고 있으며, 이는 국가 예외 상태(Ausnahmezustand)라는 국가론적 주제와 직결된다.
  • 민주주의 위기와 국가: 포퓰리즘·민주주의 역행(democratic backsliding) 문제가 한국 헌법학에서도 논의되면서, 민주적 국가의 자기방어(streitbare Demokratie) 이론이 주목받고 있다.
  • 국가와헌법연구원(Institute for State & Constitutional Studies) 설립 자체가 한국에서 '국가론'을 헌법학의 독자적 연구 영역으로 정립하려는 시도로서 학문사적 의미를 가진다.

3. 종합 비교

구분일본한국
국가론 수용 경로독일 직접 수용 (메이지 시대)독일 직접 + 일본 경유
전통적 국가론의 핵심국가법인설(미노베(美濃部)) vs 천황주권설(우에스기(上杉))독일 결단주의(허영) vs 통합이론 수용
전후/해방 이후 전환인권 중심 헌법학(아시베(芦部))헌법재판소 중심 도그마틱
현재 국가론 연구 상황공백에 가깝고, 동아시아 비교 접근 모색교과서적 처리에 그침, 독자 연구 극히 드묾
최근의 계기긴급사태 조항 논의비상계엄 사태, 민주주의 위기

4. 추가로 분석할 논점

  1. 국가론 연구 공백의 원인 분석: 한국·일본 모두 독자적 국가론이 발전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식민지 경험, 전후 냉전 구조, 헌법재판소 중심 법학 문화 등 구조적 원인의 규명이 필요하다.
  1. 한국적 국가론의 가능성: 한국 헌법 제1조 제1항("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제2항("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은 국가론의 기초 명제를 담고 있다. 이를 단순한 실정헌법 조문으로 해석하는 데서 나아가, 국가의 본질에 관한 이론적 선언으로 독해하는 연구가 가능하다.
  1. 비상계엄 사태와 국가론의 실천적 관련성: 2024년 12월 사태는 슈미트(Carl Schmitt)의 예외 상태론(Ausnahmezustand), 뵈켄푀르데(Böckenförde)의 민주적 국가론과 직접 연결되는 실천적 국가론 문제를 제기한다. 이것이 한국에서 국가론 연구를 활성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1. 국가와헌법연구원의 연구 방향: 위의 공백을 메우는 작업으로서, 독일·프랑스·미국의 국가론 연구 성과를 한국 헌법 현실에 적용하는 독자적 국가론의 구성이 가장 시급한 과제로 보인다.